고급협동조합의 O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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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스트리트맵 관련 커뮤니티 글을 보다가 K.Sakanoshita 님의 <인스타그램 지도에서 보이는 무서운 세계화 이야기(Instragram地図から見えるグローバル化の怖い話)>라는 글을 보게 되어 내용을 요약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재해석하려 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한 식당을 지도로 보여주는 모습.

인스타그램에서 장소를 검색하면 위와 같이 지도가 뜹니다. 그런데 이 지도는 어디에서 가져오는 걸까요?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이 대기업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지도를 밑바닥부터 그려서 서비스하는 것은 비경제적입니다.
세상에는 지도를 서비스하는 회사가 매우 많습니다. 전 세계 단위로는 구글 등이 있고, 국내에는 카카오와 네이버, 중국은 바이두 등이 있죠.
그러나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를 커버해야 하고, 따라서 우리나라 지도는 카카오, 일본 지도는 지리원, 유럽 지도는... 이렇게 수많은 회사와 계약을 맺는 것은 불편하고, 관리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전 세계를 커버하는 지도사 한 곳하고만 계약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글은 어떨까요? 구글 지도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아쉽게도 우리나라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꽤나 상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렇게 상품이 매력적이라 할지라도 구글과 페이스북은 각종 데이터를 두고 서로 경쟁하고 있고, 구글은 지도 가격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글 외에 다른 지도사를 쓰자니 훗날 지도 업데이트가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그것도 어렵죠.

오픈스트리트맵을 사용하는 인스타그램

그래서 페이스북은 오픈스트리트맵(OpenStreetMap)을 선택했습니다. 오픈스트리트맵은 특정 회사에서 지도를 만들고 유지보수하는 개념이 아닌, 평범한 기여자들이 지도를 만들고, 유지보수하며, 소비자(지도를 원하는 사람 및 기업)들은 지도 데이터를 다운받아 이용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소비자로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지도를 받아 쓸 수 있는 한편, 기여자로서 오픈스트리트맵을 직접 업데이트하기도 합니다. 특히 후자가 중요한데, 구글 지도는 사하라 사막을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약세를 보이지만, 오픈스트리트맵은 이러한 기여를 통해서 구글 지도보다 우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을 겁니다.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지도가 얼마나 정확하겠느냐?" 일리 있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출처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위키피디아에도 부정확한 부분이 있고, 나무위키의 역사/교통 관련 부분은 심각하게 왜곡된 내용이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일단 짚고 넘어갈 점은, 오픈스트리트맵은 100%의 정확도를 보장하지 않고, 목표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1. 기업에서 서비스하는 지도도 100% 정확하지는 않은데,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지도는 100% 정확할 수 없다.
2. 100% 정확한 기여를 자원봉사자들에게 요구하면 커뮤니티가 쪼그라든다.
3. 실제로 장소 안내, 내비게이션 서비스 등에 필요한 지도는 100% 정확할 필요가 없다. 95% 정도의 정확도면 충분하다.

아마 3번이 가장 의외일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서비스하려면 지도가 매우 정확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사실 도로를 그리는 작업은 (건물이나 기타 시설에 비해) 오류가 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내비게이션은 지도 상 도로의 위치가 실제보다 1~2m 정도 어긋나 있거나, 도로명이 한두 개 잘못 쓰여 있어도 문제 없이 기능합니다. 실제로 테슬라의 자율주행도 오픈스트리트맵을 기반으로 하는 맵박스(Mapbox) 지도를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북미 지역에서 오픈스트리트맵의 도로 데이터는 95%의 정확도, 차로 개수 데이터는 8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 바가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는 조사된 적이 없지만, 특별히 북미보다 지도 정확도가 낮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지도의 '완성도'는 북미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최근 2개월 동안 인도네시아에 기여한 상위 20명. 페이스북 직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설령 일부 지역의 오픈스트리트맵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해당 지역만 직접 기여하면 됩니다. 이 작업은 페이스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비롯한 정보기술 대기업들이 다같이 하기 때문에 기여 부담이 경감됩니다. 어찌 보자면 (개인 자원봉사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오픈스트리트맵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등이 공조해서 만들어 가는 지도 프로젝트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리하여 페이스북은 오픈스트리트맵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듯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동안 오픈스트리트맵에 기여해 오던 사람이라면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오픈스트리트맵의 정확도는 높을지언정, '완성도'는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은 대기업이기에 '자체 지도를 구축한다'라는 선택지가 가능은 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언가를 서비스하는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선택지가 애초에 불가능하며, 오픈스트리트맵을 도입하는 경우가 매우 많을 것입니다. 만약 국내 오픈스트리트맵의 완성도가 낮다면, 우리는 낮은 품질의 지도로 인스타그램과 같은 각종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죠.

최근 2개월 동안 대한민국에 기여한 상위 25명. 기업 기여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기업들의 기여를 기대하기도 힘든 것이, 기업들은 우리나라 오픈스트리트맵에 거의 기여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은 정말로 지도가 '존재하지 않는'(혹은 수십 년 전의 지도만 존재하는) 국가에 주로 기여합니다. 세상에 그런 나라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있습니다.

콜롬비아 Sugamuxi 지방의 토타 호수 분지가 납을 비롯한 중금속에 오염되면서, 인근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오픈스트리트맵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이 지역의 지도는 수십 년 전에 멈춰 있어 오염원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토타 호수는 안데스 산맥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주변 인구의 건강과 환경이 이 호수에 달려 있습니다.

- 주간OSM 540호(2020. 11. 29.)

결국 국내 오픈스트리트맵 기여를 늘릴 방안을 커뮤니티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1. 한국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의 존재성을 전 세계에 알린다.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싸게 중고차를 사고 싶을 때 친척들에게 소문을 내면 아는 사람이 파는 차를 살 기회를 잡을 수 있듯이, 한국에도 활발한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려야 우리나라에 태풍과 같은 큰 재난이 일어났을 때 재난 대응 지도 제작 프로젝트가 쉽게 구축될 수 있습니다(이러한 재난 대응 프로젝트는 인도주의 오픈스트리트맵 팀(HOT)에서 주로 구축합니다). 실제로 지진과 지진 해일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의 경우 선진국임에도 불구, 피해를 입은 지역의 지도를 업데이트해주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합심합니다.

재난 대응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HOT Tasking Manager의 일본 관련 프로젝트. 일본인이 생성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재난 대응 프로젝트는 유럽이나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현지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와 협의해 만듭니다. 만약 현지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가 없거나 미약하다고 느껴지면 독단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아예 만들지 않습니다.
오픈스트리트맵 제작에 있어서 현지인의 공조가 필수적이라는 부분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JungleBus의 CEO, Florian Lainez가 지역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Florian은 미얀마, 말리, 모로코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픈스트리트맵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현지 커뮤니티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JungleBus: 오픈스트리트맵 기반 대중교통 안내 앱.)

Pete Masters(닉네임 pedrito1414)가 HOT에서 주최하는 원격 워크숍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이번에 열린 워크숍에서는 “HOT란 대체 무엇인가?”,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의 정의는?”, “‘대담한 프로젝트’와 현지 커뮤니티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주제로 논의했습니다.

- 주간OSM 540호(2020. 11. 29.)
최근에 CartONG가 부르키나파소 지역의 지도 제작에 기여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Missing Maps 블로그에 올라왔습니다. 현지 조사에 앞서, CartONG는 매파톤을 통해 와가두구(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인근의 비공식 거주지들을 지도에 추가했습니다. CartONG 팀은 현지 조직 Yaam Solidarité와 협력해 자원봉사자들을 교육시키고 지도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 주간OSM 462호(2019. 06. 02.)
탄자니아의 지도 제작 커뮤니티를 육성하기 위해 HOT에서 OpenMap Development Tanzania와 함께 현지 사정을 이해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주간OSM 552호(2021. 02. 28.)

우리도 국내 오픈스트리트맵의 주권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활발한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다행히도, 최근에 만든 한국 오픈스트리트맵 페이스북 그룹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은 모양입니다. 주간OSM에도 홍보했고, 열린 지리 공간 정보를 논의하는 OSGeo 한국어 지부에서도 그룹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그동안은 메일링 리스트텔레그램 채널이 커뮤니티의 전부였었는데, 메일링 리스트는 친숙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고, 텔레그램은 너무 폐쇄적이죠. 그에 반해 페이스북은 매우 개방적입니다. 자신의 지인들에게 '열린 공간 데이터'나 '오픈스트리트맵'의 존재를 알리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입니다(참고로 일본은 페이스북보다는 트위터로 오픈스트리트맵 관련 소통을 많이 하는데, 이는 일본의 SNS 사용 비율에서 트위터가 1위를 차지하는 것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온/오프라인 오픈스트리트맵 매핑 이벤트도 개최하면서 커뮤니티의 내실을 다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커뮤니티의 존재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오프라인 이벤트(와 활동 사진)이거든요.

인스타그램 위치 추가를 위해 오픈스트리트맵 홈페이지에 참고를 남긴 모습.

여기부터는 여담입니다. 인스타그램이 오픈스트리트맵을 도입하고, 장소 추가 기능을 없애는 바람에('지금 내가 서 있는 곳', '출근길 지하철'과 같은 의미 없는 장소를 계속 사람들이 추가해서 막아버렸다네요) 사람들이 오픈스트리트맵 홈페이지에 와서 계속 장소를 추가해 달라는 참고(note)를 남기고 있습니다.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지도'라는 개념이 미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볼 때마다 가급적 추가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런 참고가 수천 개 가까이 되니까 정말 힘듭니다.

대한민국의 참고 개수. 포켓몬 고로 인해 오픈스트리트맵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을 때 급증했고, 올해 1월 대대적으로 참고 정리 작업을 개시하면서 크게 줄었다. 2021년에는 아무도 참고를 추가하지 않은 게 아니라, 추가된 개수와 닫은 개수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그래프가 평행하게 보인다.

이렇게라도 오픈스트리트맵을 알고, 오픈스트리트맵에 관심을 가져 주니 감사할 따름이긴 하지만, 가끔씩은 "직접 기여해 줬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이렇게 무지성으로 참고가 늘어나는 원인은 Maps.Me라는 지도 앱도 한몫 하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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